현대자동차그룹이 자율주행 분야 세계 톱티어(Top Tier)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앱티브(APTIV)社와 공동으로 미국 현지에 합작법인(조인트벤처, JV)를 설립하고 글로벌 자율주행 분야에서 ‘톱 플레이어’ 위상을 노린다.
업계에 자율주행 개발을 위한 ‘합종연횡’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유수의 완성차 업체와 유력 자율주행 기업이 별도의 JV를 설립해 자율주행차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모델은 이례적이다. 단순 협업의 틀을 넘어 합작법인 설립이라는 최적의 공동개발 방식을 택한 현대차그룹의 ‘정공법’은 글로벌 자동차 업체와 IT 기업이 주축이 된 자율주행 업계에 커다란 지각변동과 반향을 예고하고 있다.
자율주행은 자동차 산업은 물론 모빌리티 업계의 패러다임을 대전환시킬 최상위 혁신 기술로 꼽힌다. 운전으로부터 해방되면서 차량이 이동 중에도 모든 탑승자들이 시간을 여유롭게 활용할 수 있으며, 교통사고 감소, 에너지 절감 등을 통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자동차 업체들은 물론 IT 기업들도 자율주행 기술 확보 여부에 따라 지속 가능한 성장을 결정짓게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사활을 걸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앱티브의 자율주행 기술 전문 JV 설립은 미래 모빌리티 혁신을 주도하고 인간중심에 기반하는 완벽한 ‘이동의 자유(Freedom in Mobility)’를 실현해 고객가치를 높이겠다는 공동의 목표에 따른 것이다.
특히 차량 설계 및 제조, ADAS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유한 현대차그룹과 자율주행 S/W 분야 최고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앱티브가 손 잡음으로써 기술 개발 시너지 효과는 극대화될 전망이다. 신설 합작법인은 2022년까지 완성차 업체 및 로보택시 사업자 등에 공급할 자율주행 플랫폼 개발을 완료하고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또 기존 앱티브의 자율주행 연구거점 외에도 추가로 국내에도 자율주행 연구거점을 마련함으로써 세계적인 자율주행 기술력이 국내에 확산되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JV 설립을 통해 현대차그룹은 운전자의 개입 없이 운행되는 레벨 4, 5(미국자동차공학회 SAE 기준) 수준의 궁극의 자율주행차를 조기에 시장에 선보임으로써 더 이상 ‘추격자’가 아닌 글로벌 자율주행 기술을 선도하는 ‘개척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겠다는 구상이다.
■ 23일 현대차그룹-앱티브, 자율주행 S/W 전문 JV 설립 계약 체결
앱티브는 차량용 전장부품 및 자율주행 전문 기업으로, 인지시스템,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컴퓨팅 플랫폼, 데이터 및 배전 등 업계 최고의 모빌리티 솔루션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오토모티브 뉴스가 발표한 2018년 글로벌 자동차 부품 공급사 순위에서 20위를 기록했지만, 차량용 전장부품만 공급하는 업체 순위로는 세계 선두권 업체로 꼽힌다.
특히 앱티브가 핵심 사업 분야로 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있는 부문은 바로 자율주행이다. 2015년과 2017년 자율주행 유망 스타트업으로 꼽히던 ‘오토마티카(ottomatika)’와 ‘누토노미(nuTonomy)’ 인수를 통해 자율주행 개발 역량을 단번에 끌어 올렸다. 앱티브社의 자율주행 기술력은 글로벌 자율주행 기술 업체 중 최상위권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보스톤에 위치한 자율주행사업부를 중심으로 피츠버그, 산타모니카, 싱가포르 등 주요 거점에서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싱가포르와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로보택시 시범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 거점에서 자율주행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앱티브 자율주행사업부의 임직원 수는 총 700여명에 달하며, 총 100여대 이상의 자율주행차를 운행하고 있다.
여타 자율주행 전문 기업들이 주로 무난한 교통환경에서 기술을 구현하는 반면, 앱티브는 복잡한 교통 및 열악한 기후와 지형 등 난이도가 높은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이 뛰어나다는 분석이다. 지난 2018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기간 중 다양한 업체들이 로보택시 시범 서비스를 선보인 가운데, 비가 오는 날에도 유일하게 서비스를 운행한 업체는 앱티브 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앱티브가 얼마나 자사 기술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사례다.
현대차그룹과 앱티브는 자율주행 전문기업 설립을 통해 전세계에서 운행이 가능한 레벨 4 및 5 수준의 가장 안전하고, 최고 성능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 개발에 나선다. 고도화된 자율주행 기술은 보다 안전한 이동서비스 제공을 통해 사회적 비용을 크게 절감시키게 된다. 현재 북미의 연간 교통사고 비용은 8,360억 달러에 달하지만 자율주행차가 도입되면 840억 달러로 90% 가까이 비용이 낮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또한 교통체증에 따른 도로에서 낭비되는 시간과 연료비용도 크게 저감될 수 있다.
현대차그룹과 앱티브社는 23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양사 주요 경영진 및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JV 설립에 대한 본계약을 체결한다. 현대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이번 협력은 인류의 삶과 경험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자율주행기술 상용화를 목표로, 함께 전진해나가는 중대한 여정이 될 것”이라며 “자율주행 분야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앱티브와 현대차그룹의 역량이 결합된다면 강력한 시너지를 창출해 글로벌 자율주행 생태계를 선도해 나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앱티브 케빈 클락(Kevin Clark) CEO는 “이번 파트너십은 ADAS를 비롯한 차량 커넥티비티 솔루션, 스마트카 아키텍처 분야 앱티브의 시장 선도 역량을 보다 강화하게 될 것”이라며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최첨단 기술력과 연구개발 역량은 자율주행 플랫폼의 상용화를 앞당기기에 최적의 파트너”라고 언급했다.
이번 계약으로 현대차그룹과 앱티브는 총 40억 달러 가치의 합작법인 지분 50%를 동일하게 갖게 된다.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는 현금 16억 달러(한화 약 1조9,100억원) 및 자동차 엔지니어링 서비스, 연구개발 역량, 지적재산권 공유 등 4억 달러(한화 약 4,800억원) 가치를 포함 총 20억 달러(한화 약 2조3,900억원) 규모를 출자하며, 앱티브는 자율주행 기술과 지적재산권, 700여명에 달하는 자율주행 솔루션 개발 인력 등을 JV에 출자한다.
합작법인은 이사회 동수 구성 등 양측 공동경영 체계를 갖추게 된다. JV는 현대차그룹의 완성차 양산 기반과 앱티브의 자율주행 S/W 기술을 확보하게 되며, 현대차그룹과 앱티브는 JV를 통해 양측의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유기적이면서도 밀접한 협업체계를 구축한다.
지난해 9월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수석부회장 취임 이후 미래 ‘게임 체인저’로 거듭나기 위한 과감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번 신설법인 설립 결정으로 완전자율주행 기술 개발의 중요한 퍼즐을 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그룹의 대규모 투자와 앱티브의 고도화된 기술력의 결합으로 JV의 연구개발 역량은 대폭 향상될 전망이며, 자율주행 분야 글로벌 우수 인재 확보에도 박차를 가하게 된다.
현대·기아차는 내연기관차는 물론 순수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등 친환경차량을 합작법인에 공급해 원활한 자율주행 연구 및 도로 주행 테스트를 지원하고, 기존에 앱티브가 펼치던 로보택시 시범사업에도 현대·기아차 차량으로 대체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앱티브 자율주행사업부가 운영하던 기존 연구거점들은 신설 합작법인에 그대로 존치되며, 추가로 국내에도 연구거점을 신규 설립, 국내 자율주행 기술력도 ‘퀀텀 점프’ 수준의 성장을 이룰 발판이 될 전망이다. 또한 5G 통신, 인공지능 등 국내 관련 산업과의 협업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면서 4차산업 혁명과 고부가가치 산업의 동반 성장을 견인하게 될 전망이다.
신설 합작법인은 전세계 자동차 메이커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자율주행용 S/W 개발 및 공급을 목표로 한다. JV 본사는 미국 보스턴에 위치하게 되고, 추후 설립 인허가, 관계당국 승인 등을 거쳐 이르면 내년 중 최종 설립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대규모 투자 외에도 보유하고 있는 자율주행 관련 특허 제공, 차량 개조, 인력 지원 등 전폭적인 협력과 지원을 통해 기술교류 효과를 극대화할 방침이다.
■ 자율주행, S/W가 기술 핵심…현대차그룹 최상위 S/W 개발 가속화 길 열었다
현대차그룹의 이번 JV 설립 계약 체결은 현대차그룹이 앱티브와 함께 최상위 자율주행 S/W 개발을 가속화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게 됐다는 의미를 갖는다. 현대차그룹은 단순 협업수준을 넘어 S/W 분야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업체와 JV를 통해 공동 개발하는 최적의 ‘정공법’을 통해 조기에 자율주행 기술을 선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자율주행 S/W를 단순 공급받을 경우 근본적인 자율주행 솔루션을 확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개방형 스마트폰 OS를 사용하고 있는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자체적으로 해당 플랫폼을 가공할 수 없는 한계에 직면해 있는 상황은 이를 대변한다. 자율주행 기술의 핵심은 ▲인지 ▲판단 ▲제어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세 가지 과정이 원활하게 수행되기 위해서는 각종 하드웨어와 연계해 통합 제어할 수 있는 ‘엔드투엔드(End-to-End)’ 소프트웨어 솔루션이 필수적이다.
전문가들도 자율주행 기술의 복잡성과 고난이도를 고려할 때 다양한 정보와 부품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탄탄한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자율주행 경쟁력을 판가름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구글 등 IT 기업들이 자율주행 개발에 뛰어들 수 있었던 이유도 이들이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앱티브社가 자율주행용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선두권 업체이면서도 지금까지 글로벌 자동차 업체로부터 지분 투자 등 적극적인 협업 구도를 갖추지 않았던 점은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최상의 파트너를 확보한 셈이다.
앱티브 역시 자동차 개발 및 제조 역량과 세계 톱 5위의 생산능력, 글로벌 브랜드 위상과 함께 오픈 이노베이션 확대 전략을 적극 펼치고 있는 현대차그룹과 파트너십을 구축하게 됨으로써 상호 윈-윈(win-win)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게 됐다. 현대차그룹과 앱티브가 설립하는 JV는 글로벌 자율주행 생태계와 적극적으로 연대 가능한 협업 시스템을 마련, 개방형 협력 구조를 갖춘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신설 법인의 자율주행 S/W 기술 공급 기회는 보다 확대될 전망이며, 다양한 업체들과의 협업 과정에서 보다 신속하고 광범위한 기술 테스트 역시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주요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은 일반적으로 자율주행 전문 IT기업을 완전 인수하거나 소수 지분 확보를 통해 이들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완전 인수의 경우 타 업체에 대한 기술 폐쇄성으로 인해 호환성이 부족할 수 있으며, 소수 지분 확보의 경우 자동차 업체가 핵심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한계가 있다는 단점이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글로벌 자율주행 개발 경쟁은 누가 우군을 더 많이 확보해 다양한 환경에서 더 많은 주행 데이터를 확보하느냐가 핵심 관건”이라며 “현대차그룹은 신설법인과의 우선적 협력을 통해 현대·기아차에 최적화된 플랫폼을 더욱 신속하게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 자율주행, 자동차 산업 / 모빌리티 산업 패러다임 변화 속 핵심기술로 주목
자율주행은 커넥티비티(Connectivity), 자율주행(Autonomous), 서비스(Service), 전동화(Electric) 등 ‘C.A.S.E.’로 대표되는 자동차 산업의 급속한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최고의 핵심 기술로 주목 받고 있다.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CaaS(Car as a Service ; 플릿, 리스 등)와 MaaS(Mobility as a Service ; 셰어링, 차량 호출 등), TaaS(Transportation as a Service ; 이동수단 서비스) 등 서비스 분야에서도 자율주행 기술과 연계해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궁극적으로 자율주행 기술이 도시 전체 공유차량에 적용되는 단계까지 발전하게 되면, 고객에게 완벽한 이동의 자유를 제공하는 ‘AV(Autonomous Vehicle) TaaS’가 실현될 전망이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자율주행 기술은 통신, 인공지능, 센서 등 첨단 기술과의 융합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고부가가치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글로벌 업체들의 자율주행 개발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관련 시장도 큰 폭의 성장이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은 고객가치 향상을 위한 ‘이동의 자유’를 가속화하고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자율주행차 개발 역량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2017년 CES에서 아이오닉 기반의 자율주행차가 라스베이거스 도심 주야 자율주행 시연에 성공하면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또 지난해 2월에는 넥쏘와 제네시스 G80에 자율주행 4단계 수준의 기술들을 탑재, 서울-평창 간 190km 고속도로에서 성공리에 자율주행을 시연하였으며, 8월에는 화물 운송용 대형 트레일러로 의왕-인천간 약 40km 구간 자율주행 기술 구현에 성공하며 앞선 기술력을 입증했다.
현대차그룹은 앱티브와 자율주행 전문 JV 설립 이후에도 기존에 협업하고 있는 글로벌 업체들과의 파트너십을 지속 유지하는 등 글로벌 기술 변화 트렌드에 공격적으로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기존 업체들과의 협력 관계 유지는 지역별 특성을 고려한 자율주행 기술 개발은 물론 다양한 검증 테스트를 가능하게 해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분야 실행력을 보다 강화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 동안 현대차그룹은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들과 과감한 ‘맞손’ 전략을 펼쳐왔다. 현대·기아차는 자율주행차의 ‘두뇌’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 기반 통합 제어기와 센서 개발을 위해 미국 인텔(Intel) 및 엔비디아(Nvidia)와 협력하는 한편, 중국의 바이두(Baidu)가 주도하고 있는 자율주행차 개발 프로젝트인 ‘아폴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아울러 고성능 레이더(Radar) 전문 개발 미국 스타트업 ‘메타웨이브’, 이스라엘의 라이다(Ridar) 전문 개발 스타트업 ‘옵시스’, 미국의 인공지능 전문 스타트업 ‘퍼셉티브 오토마타’ 등에 전략투자하고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미래 모빌리티 연구기관인 ACM(American Center for Mobility)의 창립 멤버로, ACM이 추진 중인 첨단 테스트 베드 건립에 500만 달러(약 56억원)를 투자하기도 했다.
지난 6월에는 미국 자율주행기술 전문 기업 ‘오로라(Autora)’에 전략투자하고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를 위한 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7월 러시아 최대 IT기업 얀덱스(Yandex)와 공동 개발한 자율주행 플랫폼을 공개하고, 러시아 전역에서 로보택시를 시범 운영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