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한상기(프리랜서 자동차 칼럼니스트)
국내 SUV 판매는 지난 5월부터 본격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현대의 베라크루즈와 투싼, 싼타페는 각각 45.7%, 23.8%, 10.1% 하락했고 기아의 스포티지와 쏘렌토도 엇비슷한 비율로 판매가 떨어졌다. 쌍용은 경유 값이 가솔린과 비슷해지는 시점부터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메이커이다. 승용차는 체어맨 하나 밖에 없고 다른 메이커처럼 당장 가솔린 SUV를 내놓을 수 없는 게 악재로 작용했다. 쌍용은 그동안의 효자 차종이었던 렉스턴의 5월 판매가 71.1%, 액티언과 액티언 스포츠는 각각 78.7%, 59.4%, 뉴 카이런은 무려 90.3%,나 하락했다. GM대우의 윈스톰은 1,185대로 57.5% 하락했고, 르노삼성의 QM5도 514대로 4월의 822대에 비해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
메이커들은 가솔린 모델 투입으로 긴급처방을 내렸지만 일시적인 효과에 그치고 있다. 가솔린 SUV는 연비 자체가 떨어지기 때문에 디젤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 결국 SUV의 수요는 2리터 이하의 승용차로 옮겨가고 있다. 현대 쏘나타 같은 경우는 지난 7월 주문만 2만대를 넘기면서 공급이 딸릴 정도이고 GM대우의 토스카도 판매가 10% 이상 늘어나고 있다.
상반기 전체를 본다면 SUV의 판매는 전년 대비 31.9%(올해 출시된 QM5와 모하비 제외) 하락했다. 판매 순위를 보더라도 SUV의 부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작년만 해도 싼타페와 투싼, 스포티지는 판매 10위 안에 랭크되었지만 올해에는 싼타페만이 7위에 올라있을 뿐이다.
SUV의 수요가 쏘나타와 모닝 등의 승용차로 옮겨간 것이다. 경차 특혜를 톡톡히 보고 있는 모닝은 작년 15위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3위까지 순위가 올라왔다. 반면 작년 상반기 7위였던 스포티지(-34.5%)와 10위 투싼(24.2%)은 각각 15위와 14위로 순위가 대폭 하락했다. 싼타페는 2리터 디젤 모델이 출시되면서 판매 하락폭이 10.1%로 SUV 중 가장 적었던 것이 순위 유지의 이유였다. 반면 윈스톰은 8,214대(44.7%)에 그치며 11위에서 19위로, 7,539대(-43.1%)의 액티언은 14위에서 22위, 6,351대(-19.1%)의 베라크루즈는 19위에서 23위, 3,330대(-44.7%)의 쏘렌토는 25위에서 30위로 순위가 추락했다.
7월에는 모든 차종의 판매가 늘어났지만 SUV는 예외였다. 전년 동월 대비해서 승용차는 8만 8,885대(+5.9%)가 팔렸고 특히 경차가 162.9%나 늘어났지만 SUV는 16.9%나 하락했다. SUV는 쌍용이 렉스턴과 카이런, 액티언 등의 2009년형 모델을 한 발 앞서 선보이면서 판매가 79% 늘어났지만 전년 동월에 비해서는 크게 감소한 수치를 보였다. 르노삼성의 QM5는 가솔린 투입으로 괜찮은 실적을 거두고 있다. 7월의 QM5 판매 중에서 가솔린 모델의 비율이 21%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월간 판매는 654대로 초기의 실적에 비하면 크게 떨어지는 수치이다.
국내 SUV 시장 침체를 만회하기 위해 국내 완성차 메이커들은 가솔린 SUV 모델을 투입해 순간적이지만 살아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하락세를 조금 완화시켰을 뿐 가솔린 SUV의 상품성은 금방 바닥나고 말았다. QM5를 제외한다면 2리터 가솔린과 4단 AT의 조합은 디젤의 경제성을 절대 따라올 수 없기 때문이다. QM5도 고효율 CVT 때문에 배기량 대비 좋은 연비를 갖고 있지만 디젤보다 못한 게 사실이다. 국제 유가의 상승이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국내의 기름 값이 인하된다는 것은 기대하긴 힘들다. 따라서 SUV의 하락세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SUV를 둘러싼 국내의 환경은 스케일만 다를 뿐 미국의 상황과 상당히 흡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