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한상기
자동차의 안전은 크게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1차적인 것과 사고 후의 충돌 또는 부상 여부를 말하는 2차적으로 나뉜다. 흔히 적극적과 수동적인 안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기술적으로 본다면 사고 후 운전자를 보호하는 안전벨트와 에어백은 2차적 안전에 들어가고 ABS, ESP 등은 1차적 안전 장비에 포함된다. 최근에는 보행자까지 고려한 3차적인 안전도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20세기에는 충돌 안전성이 곧 자동차의 안전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사고를 방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개념이 잡힌 것도 불과 15년 안팎이다. 이런 점은 충돌 안정성이 점점 상향평준화되면서 더욱 강해지고 있다. 충돌 안전성을 내세우던 볼보가 변신한 것도 이런 이유이다. 실제로 최근의 충돌 테스트 결과를 살펴보면 몇몇 중국차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모델이 좋은 성적을 얻고 있다.
유로 NCAP(New Car Assessment Program)에 따르면 최근 나오는 차들의 97%가 별 4개 이상을 받는다. 미국 NHTSA(National Highway Traffic Safety Administration)의 올해 충돌 테스트만 해도 97%가 별 5개를 받았다. NHTSA의 경우 1979년만 해도 별 4개를 받는 비율이 30%에 불과했다. 그만큼 최근에 나오는 차들은 충돌 안정성이 좋아졌고 유로 NCAP의 보행자 안전도에서도 67%가 별 2개를 받고 있다.
오늘날의 자동차에는 무수히 많은 전자 장비들이 실려 있고 이중 상당수가 1차적 안전에 관련된 것들이다. 사고 후 안전한 것 보다 아예 사고가 나지 않는 게 더 낫다는 것은 상식이고 앞서 말한 1차적 안전이 발전의 여지가 많이 남았다는 것도 한 이유이다. 1차적 안전에는 운전자의 입력을 곧바로 출력하는 운동 성능이 중요시 되고 여기에는 고성능 브레이크, 좋은 핸들링, 고강성 섀시 등도 포함된다. 하지만 보통의 운전자는 위급 상황에서 사고를 회피할 만큼 반응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사고를 회피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런 상황을 만나지 않는 게 더욱 안전한 것이 아닐까.
최신의 안전 장비는 사람의 눈을 대신하고 상황을 스스로 판단해 차의 거동까지 결정하는 수준이다. 즉 사람의 오감을 대신해 교통 상황을 모니터하면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 또는 경감할 수 있다. 독일 교통부는 이 같은 드라이브 어시스트 장비가 교통사고를 반 이상 줄일 수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자동차 자체의 기술 뿐만 아니라 교통 시스템과의 연계를 통해 가능하다. 메이커들은 안전 규정을 위해서라도 이런 기술들을 상용화 해야 할 의무도 있다. EU의 e세이프티 플랜에 따르면 2010년까지 도로에서 일어나는 사고를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다.
1차적 안전 장비는 이미 다수의 양산차에 적용되어 운전자를 보조하고 있다. 넓은 범위에서는 ABS조차 드라이버를 보조하는 기술들이지만 최근에 나온 장비 중에서는 3세대 ACC(Adaptive Cruise Control)와 차선 감지 시스템 등이 가장 돋보인다.
ACC 몇몇 국산차에도 탑재되면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장비이다. 3세대로 접어든 ACC는 벤츠의 1세대 디스트로닉 보다 현저하게 성능이 높아져 다른 기술들과 연계될 경우 무인 운전의 상용화까지 기대케 하고 있다. ACC는 1986년 EU가 Prometheus(Programme for European Transport with Highest Efficiency and Unprecedented Safety)라는 프로젝트로 개발을 시작했으며 가장 먼저 상용화 된 모델은 1998년 벤츠 S 클래스(디스트로닉)이다.
ACC는 말 그대로 보다 똑똑하고 적극적인 정속 주행 장치이다. 크루즈 컨트롤의 기능에 전방의 물체를 인식하는 기능이 추가된 것. 물체가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제동을 걸고 다시 멀어지면 스스로 가속한다. 물론 세대에 따라서 성능 차이는 크다. 포드 몬데오의 2세대와 체어맨 W의 3세대만 비교해 봐도 물체 인식 후 발생되는 제동력이 다르다. 또 3세대는 차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 기능이 해제되지 않는다. ACC의 시작은 최고급 세단이었지만 현재는 르노 메간 같은 C 세그먼트부터 S 클래스 같은 고급 모델까지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컨티넨탈은 지멘스 VDO를 인수하면서 360도 인식 가능한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컨티넨탈의 ACC+스톱 & 고우는 긴급 제동 장치와 충돌 경고, 차선 감지, 차선 지키기, 사각 지대 경고 장치, 나이트 비전까지 통합된 개념이다. 이 기능들의 대부분은 상용화된 상태지만 보다 진보된 센서와 통신 기술이 나오면 성능은 비약적으로 올라갈 예정이다.
LDWS(Lane Departure Warning System)는 차선 이탈을 모니터해 알려주는 기술이다. 국내에서는 쌍용 체어맨에 가장 먼저 선보였고 일부 수입차에도 탑재되고 있다. 현재의 LDWS는 카메라에 찍힌 이미지를 베이스로 측면 위치와 측면 속도, 스티어링 앵글, 차선의 폭, 도로의 굴곡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분석 결과 차선 이탈이 감지되면 운전자에게 이를 알린다. 알리는 방법은 보통 경고음이 사용되며 BMW의 경우 스티어링 휠에 진동을 발생시킨다. 시트로엥 C4, C5에 쓰이고 있는 발레오의 레인뷰는 방향지시등의 조작 없이 차선 이탈이 감지될 경우 시트에 강한 진동을 발생시킨다. 비디오 카메라는 룸 미러에 내장되며 레인 센서와 통합되기도 한다.
자동차의 안전장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교통시설과의 연계이다. EU는 지난 2006년 교통사고와 정체 현상을 줄이는 목적으로 ICI(Intelligent Car Initiative)를 제정했다. ICI의 주파수는 차와 차는 물론 교통시설과도 이어지는 통신 네트워크에 쓰이게 된다. EU는 양방향 통신을 구축함으로서 충돌 사고는 물론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차와 차 사이를 잇는 양방향 통신은 운전자가 전방의 상황을 미리 알 수 있어 사고가 발생할 경우 연쇄 추돌로 이어지기 쉬운 터널 또는 블라인드 코너에서 더욱 유용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차대차 통신은 혼다, 마쓰다, BMW, GM, 볼보 등이 활발하게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완벽한 차대차 통신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10~1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금까지 열거한 기술들과 차대차 통신이 상용화 될 경우 몇몇 메이커들이 주장하고 있는 ‘사고 없는 세상’이 실현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기술 이외에도 잘 정돈된 인프라와 운전자들의 인식 개선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어텐션 어시스트
메르세데스-벤츠는 내년에 나올 신형 E 클래스에 또 하나의 신기술을 선보인다. 어텐션 어시스(Attention Assist)로 불리는 이 장비는 스티어링 앵글과 측면 가속, 운전자의 드라이빙 스타일, 스로틀의 개도율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후 운전자의 피로 정도를 감지해 집중력을 높인다.
차체의 곳곳에 부착된 센서는 이런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ECU로 전송한다. 만약 분석된 데이터가 기존과 다를 경우 경고음과 함께 휴식을 취하라는 메시지가 뜨게 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운전자의 피로에서 비롯되는 고속도로에서의 사고는 음주운전보다도 높다. 또 운전자의 피로 또는 졸음 운전이 사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대형 사고의 25%를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연속으로 4시간 이상을 운전할 경우 반응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조사도 나와 있다.
볼보 CWAB와 CASS
볼보의 CWAB(Collision Warning with Auto Brake)와 CAAS(Collision Avoidance by Auto Steering)는 위급 상황에서 운전자를 보조하는 기술이다. 현재의 기술과 다른 것은 단순히 경고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동차를 제어한다는 것. 차대차 통신과 함께 3대의 컨셉트카에 탑재되어 테스트가 진행 중이다.
CWAB의 센서는 자동차 간의 충돌 뿐 아니라 보행자의 존재까지 인식한다. 즉 운전자가 미처 보지 못하는 보행자를 발견해 사람의 눈에 가까워지고 있다. CWAB의 레이더 센서는 보행자와의 거리가 가까워질 경우 1차적으로 윈드실드의 헤드 업 디스플레이에 적색 램프를 띄우면서 경고음을 발생한다. 여기까지는 운전자가 보행자를 발견할 경우 충분히 멈출 수 있다는 볼보의 설명. 하지만 운전자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보행자와의 거리가 더욱 좁혀질 경우 이 시스템은 브레이크의 압력을 올려 제동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더욱 긴급한 상황에서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다면 자동으로 최대의 제동력을 실행시켜 자동차의 속도를 24km/h까지 떨어트린다.
CAAS는 차선이탈방지 기능에서 더욱 발전된 기술이다. 방향 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바꿀 경우 측면에 달린 카메라가 이를 감지해 경고음을 발생한다. 여기에 자동차가 차선을 이탈해 다른 차량과의 충돌 가능성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스티어링의 앵글을 원래 각도로 되돌려 주는 기능까지 있다. 실수로 중앙선을 넘어갈 경우 치명적인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볼보 트럭 DAS와 LCS
볼보 트럭의 DAS(Driver Alert Support) 역시 운전자의 집중도를 높이는 장비이다. 볼보 트럭은 교통사고의 90%가 운전자의 부주의에서 비롯된다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특히 장거리 운전이 잦은 트럭의 경우 운전자의 피로와 주의 산만에서 비롯되는 사고의 위험을 줄이는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DAS는 차량에 부착된 카메라가 주행 차선을 지속적으로 감시해 주행 라인이 불규칙할 경우 곧바로 음성과 문자로 운전자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LCS(Lane Changing Support)는 대형 트럭의 취약점 중에 하나인 사각 지대를 위한 것이다. LCS는 별도의 레이더 센서가 사각 지대의 사물을 감지해 A 필러에 달린 램프를 통해 운전자에게 알린다. 30km/h 이상의 속도에서 자동으로 활성화 되는 코너링 램프도 추가된다. 또 유럽 트럭 메이커로는 처음으로 FH와 FM에 레인 센서도 옵션으로 제공된다.
컨티넨탈 AFFP
독일의 부품 회사 컨티넨탈은 위급 상황을 알려주는 AFFP(Accelerator Force Feedback Pedal)를 선보이고 있다. AFFP는 ESC, ACC와 연계해 위급 상황을 페달의 진동 또는 경고음으로 운전자에게 알려준다. 만약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위험하게 밟고 있다고 판단될 경우 즉시 경고음을 내보내고 내장된 전기 모터가 페달을 반대로 되돌리는 신호를 보낸다. AFFP에 내장된 전기 모터는 반응 시간이 0.1초에 불과하다.
운전자의 주의가 흐트러진 상황에서 계속 가속할 경우 AFFP가 보내는 신호를 감지해 속도를 줄일 수 있다. 또 ACC가 앞차와의 거리가 가까워짐을 감지할 때도 페달에 진동을 발생시킨다. 컨티넨탈에 따르면 AFFP는 후방 추돌 사고를 줄이는데 효과적이다. 2006년 기준으로 미국 전체 사고의 20%, 독일의 44%, 일본의 57%가 후방 추돌에서 비롯되었다.
오펠/복스홀 FCS
인시그니아에 탑재되는 오펠/복스홀의 FCS(Front Camera System)는 세계 최초로 표지판까지 인식하는 시스템이다. 즉, 속도 제한은 물론 추월 금지 표시 등을 카메라가 인식해 이를 운전자에게 알려준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도로의 제한 신호를 운전자 보다 한 발 앞서 발견하는 것. 인시그니아의 FCS는 TSR(Traffic Sign Recognition)과 LDW(Lane Departure Warning) 기능이 통합된다.
FCS는 오펠/복스홀과 헬라가 공동 개발한 와이드 앵글/고화질 카메라가 시스템의 핵심이다. 이 카메라는 윈드실드와 룸미러 사이에 위치하며 도로의 표지판과 차선을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카메라의 크기는 일반 휴대폰 정도지만 초당 30프레임을 찍을 수 있고 TSR 기능은 전방 100m 내의 표지판을 인식할 수 있다. 표지판을 인식할 경우 시스템은 계기판을 통해 운전자에게 경고 메시지를 띄운다. FC는 인시그니아에 옵션으로 제공되며 차후 다른 모델에도 확대 적용될 예정이다.
포드 스마트 교차로 시스템
포드가 교통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쌍방향 통신의 스마트 교차로 시스템을 진행 중이다. 이 시스템은 전체 교통사고의 40%, 모든 충돌 사고의 20%가 교차로에서 발생한다는 데이터에 근거한 것으로, 차와 차 사이를 잇는 쌍방향 통신이다.
포드의 스마트 교차로 시스템은 일본과 독일 메이커들이 시범 운행에 들어간 것과 흡사한 구조이다. GPS를 포함한 전자 장비를 통해 차 사이를 연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컨셉트이다. 교차로와 신호등, 횡단보도 등의 상황을 미리 알릴 수 있고 위험이 감지될 경우 윈드실드 하단에 빨간불이 점등되면서 운전자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이 시스템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표준화가 필수이다. 따라서 포드는 GM과 혼다, 다임러, 토요타 등과 함께 CAMP(Crash Avoidance Metrics Partnership)라는 시스템의 표준화를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마쓰다 ASV-4
마쓰다는 차대차 통신을 위해 ASV-4(Advanced Safety Vehicle-4)를 운영 중이다. ASV-4는 차와 차 사이의 통신을 통해 블라인드 코너처럼 전방의 상황을 알 수 없는 경우 다른 운전자에게 이를 알려줄 수 있다. 즉, 후방 추돌 같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효과가 있다.
마쓰다의 ASV-4는 PSS(Precrash Safety System)가 적용되어 전방에 있는 물체가 접근할 경우 경고음으로 운전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며 필요할 경우 스스로 제동을 건다. 이 프로젝트는 일본 정부가 장려하고 있는 ASV 플랜을 기반으로 하며 마쓰다 뿐 아니라 혼다도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ASV 계획이 발표된 것은 지난 1991년으로, 이미 4세대로 발전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