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한상기(프리랜서 자동차 칼럼니스트)
그동안 SUV는 곧 디젤차로 통해 왔었다.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 차이가 벌어지면서 승용차에 비해 연비가 떨어지고 무거운 SUV는 디젤 엔진이 당연한 선택이었다. 오너들도 디젤차의 저렴한 유지비에 SUV를 선택했다.
올해 들면서 국제 유가의 상승과 함께 국내 경유 값도 널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경유 값은 ‘어어’ 하는 사이에 가솔린과 같아져 버렸다. 기존 디젤차 오너의 입장에서는 날벼락과도 같다. 싼 맛에 타던 메리트가 날아가 버렸으니 많은 이들이 황당한 심정일 것이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가솔린 SUV이다. 국내에서 가솔린 SUV가 어떤 존재인가. 수퍼카만큼이나, 어쩌면 더 보기 힘든 차종이 가솔린 엔진의 SUV였다. 국제적으로 SUV의 판매 자체는 줄어들고 있고 가솔린차 일색이던 미국조차 급락에 급락을 거듭하고 있다. SUV란 차종 자체가 연비가 좋을 수가 없기에 친환경이 최고 덕목인 현 시점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가솔린 SUV를 바라보는 마음이 불편한 것은 우선 친환경적이지 않고 근시안적인 정책의 결과물이라는 이유이다. 주머니 사정에 휘둘리는 오너야 그렇다고 쳐도 정책과 이에 곧바로 응답하는 메이커의 자세는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 알다시피 한국의 기름 값에 붙는 세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름에 붙는 세금이 엄청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즉, 가장 손쉽게 세금을 걷어 들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말이다.
그동안 연료의 가격 정책에 따라 각 차종의 판매는 등락을 거듭했다. 한때 LPG 가격을 동결해 가스차의 판매가 활성화 됐던 적이 있고 이에 따라 판매도 그쪽으로 쏠렸다. 그리고 디젤 승용차의 판매가 시작되면서는 경유와 가솔린의 가격 차이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 판매를 부추 켰다. 이제 다시 가솔린의 차례가 돌아온 것이다. 경유 값이 높아지면서 가솔린차의 판매가 늘어나고 급기야는 가솔린 SUV까지 나왔다. 언제 또 가솔린이 경유 보다 비싸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때 되면 다시 가솔린 SUV가 찬 밥 신세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디젤차는 보통 가솔린 보다 비싸다. 그렇기 때문에 연료 가격이 동일하다면 굳이 디젤차를 살 필요성이 없어지는 것이고 가솔린 SUV가 팔리는 주된 이유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여전히 디젤 SUV는 가솔린 SUV 보다 장점이 더 많다. 같은 중량에 같은 배기량이라면 디젤의 연비가 더 좋고 특히 부하가 많이 걸리는 상황에서는 그 차이가 더 벌어진다.
우선 공인연비만 비교해 보아도 그 차이가 극명하다. 현대 투싼의 경우 2.0 디젤(4단 자동, 2WD)의 연비는 13.1km/l지만 얼마 전 출시된 2.0 DOHC 가솔린(4단 자동)은 9.8km/에 불과하다. 이는 형제차인 기아 스포티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 투싼과 동일 사양의 스포티지 2.0 디젤의 연비는 13.1km/l지만 2.0 가솔린은 9.9km/l에 그친다.
공인연비가 실연비 보다 떨어지는 것은 상식이다. 실제로 SUV가 일상의 발로서 도심 주행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실연비가 공연비 보다 떨어질 것은 자명하다. 특히 2리터 가솔린과 4단 자동변속기로 승용차 보다 무거운 1.6톤의 차체를 끈다는 자체가 어찌 보면 넌센스다. 특별히 회전수를 올리지 않는 한 동력 성능도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엔진이 2리터를 넘어가면 국내 세제상 상품성이 떨어진다. 한 마디로 국내 실정에 맞지 않는 차종이다. 르노삼성의 QM5는 CVT 때문에 비교적 연비가 좋지만 기존의 2리터 디젤보다 기름을 더 먹는 게 사실이다.
메이커측에서는 가솔린 SUV가 디젤 SUV 보다 차량 가격이 싸다는 것을 내세우면서 떨어지는 연비를 합리화 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올바른 대답이 될 수 없다. 단기적으로 판매 대수를 높이기 위한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SUV라는 차종은 승용차와 진배없다. 매일 타고 다니는 일상의 발이란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환경론자들이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을 논할 때 SUV를 가장 먼저 거론한다. 언뜻 보면 무지막지한 출력의 수퍼카나 스포츠카가 반환경의 아이콘 같지만 판매 대수가 적고 주행 거리가 짧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 닿지는 않지만 또 다른 문제 중 하나가 세계적인 친환경 트렌드에 완전히 반대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같은 배기량일 경우 가솔린이 디젤보다 CO2 배출량이 25~30% 많다. 굳이 자동차를 논하지 않더라도 세계의 모든 정책이 CO2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전 세계적인 현안 하나를 꼽는다면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알려진 CO2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에서도 최우선으로 중요시 하는 것이 CO2이다.
유럽의 평균 CO2 규정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기업평균연비 역시 디테일만 조금 다를 뿐 내용은 같다. CO2를 줄이는 것이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유럽은 CO2를 적게 배출하는 디젤이 친환경적이라는 이유로 일찍부터 판매가 활성화 되어 있고 각국의 정부도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는 소비자들도 마찬가지여서 이미 유럽 신차의 절반 이상이 디젤차이다. 물론 유럽 소비자들이 특별히 환경 의식이 투철해 디젤차를 사는 것은 아니다. 제도적으로 지원이 되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정부가 저 CO2 차량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고 영국은 혼잡세 등을 차등으로 적용하고 있다. 곧 대부분의 EU 국가가 CO2 배출에 따른 과세 제도를 도입한다.
이에 반해 국내는 정책적으로 그런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인구는 적지만 2005년 기준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에 있어 세계 6위, 1990년부터 2004년까지의 배출량 증가율은 세계 1위이다. 간신히 도입된 것이 올 8월부터 연비 라벨에 CO2 배출량 표시 정도이다. 이렇게 CO2에 관한 무풍지대이기 때문에 가솔린 SUV라는, 시대에 역행하는 새 트렌드가 생길 수 있었다. 자동차 메이커도 어쩌면 마지막 기회라고 볼 수 있는 현 시점을 곧바로 이용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자동차 업계는 CO2를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CO2 해결이 기업의 존폐를 결정할 정도가 됐고 각 규제를 만족하지 못하면 사업 자체를 할 수가 없게 된다. 규제 때문에 기술이 발전해 멀게만 느껴졌던 규정도 이제는 ‘할 수 있겠다’라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반면 그런 규제가 없는 국내에서 가솔린 SUV는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 또는 순간적인 판매만을 노리는 정책의 발로이다.
이렇게 가솔린 SUV는 CO2 배출량만을 놓고 따져 봐도 존재의 의미가 약해진다. 투싼의 예만 들어도 디젤이 214g/km, 가솔린이 238g/km, 파워트레인이 동일한 스포티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 CO2 배출량이 많다는 것은 연비가 나쁘다는 말과 똑같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가솔린 SUV는 직간접적으로 득보다 실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가솔린 SUV는 잘 팔리고 있고 신차도 계속 나온다고 한다. 정책을 결정하는 정부와 차를 만드는 메이커, 차를 사는 소비자 중 누구 탓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