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스토리-로터스-경량화 외길 60년

칼럼
로터스는 수많은 자동차 회사 중에서 가장 개성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천재적인 엔지니어 콜린 채프먼이 창업한 로터스는 영국의 전형적인 백야드 빌더로 시작해 F1까지 제패하며 그 성능을 세계에 떨쳤다. 올해는 콜린 채프먼이 그의 첫 레이싱카를 만든지 6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최초의 Mk1부터 현재의 엘리스까지 경량 스포츠카의 대명사로 자리잡고 있는 로터스의 과거와 오늘을 되돌아본다.

글/한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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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량화 하면 떠오르는 이름. 바로 로터스이다. 경량 스포츠카가 로터스만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그 누구도 로터스만큼 경량화를 대중화시키지 못했다. 로터스는 창업자의 철학에 따라 ‘무게를 덜어내 성능을 높인다’라는 단순한 명제를 처음부터 지금까지 충실히 지키고 있다. 회사의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몇 번씩 소유권이 바뀌었지만 로터스 엔지니어링으로 대변되는 기술력은 모든 메이커들이 탐내는 그들만의 재산이다.

출발은 백야드 빌더, Mk7으로 메이커의 기틀 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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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는 자동차 만들기가 가장 자유로운 영국 특유의 토양에서 태어났다. 시작은 1947년 창업자 콜린 채프먼이 제작한 Mk1 레이싱카이다. Mk1은 콜린 채프먼 자신이 직접 레이싱에 참가하기 위해 30년대의 오스틴 세븐을 개조한 모델이다. 이후 기념비적인 모델이자 최초의 로드카인 세븐을 내놓으며 로터스의 역사가 시작된다. 세븐은 케이터햄의 배지를 달고 아직까지도 생산되고 있으며 모든 키트 카의 교과서격인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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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6 베이스의 세븐은 가볍다는 장점을 십분 살려 뛰어난 가속력과 핸들링 성능을 구현했다. 로터스가 내세운 경량화의 철학은 당시로서는 매우 낯설면서도 신선한 것이었다. 로터스는 다음 모델의 개발비 마련을 위해 1973년 Mk7을 케이터햄에게 넘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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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나온 엘리트는 로터스의 두 번째 모델이다. 엘리트는 당시로서는 가장 앞선 기술 중 하나였던 글래스 파이버 모노코크 보디를 채용해 높은 강성을 유지하면서도 차체 중량은 567kg에 불과했다. 엘리트 이전까지만 해도 글래스 파이버는 도어와 보닛에 제한적으로 쓰였다. 콜린 채프먼은 엘리트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도어 윈도우도 플렉시글래스(투명도가 높고 형태를 마음대로 가공하기 쉬움)를 적용했다.
또 윈드터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기저항계수는 0.29(출시 몇 년 후 로터스가 밝힘)에 불과했다. 로터스는 엘리트의 보디 디자인을 위해 항공기 회사의 에어로다이내믹 전문가인 프랭크 코스틴까지 초빙하는 정성을 보였다. 코스틴은 바닥을 최대한 평평하게 만들어 터뷸런스를 최대한 줄이면서 다운포스를 늘리는 성과를 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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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 서스펜션은 싱글 트레일링 암이 포함된 󰡐채프먼󰡑 스트럿 시스템이었다. 놀랍게도 엘리트의 서스펜션은 로터스의 1인승 레이스카와 동일했다. 단지 스프링과 댐퍼의 강성이 조금 달랐을 뿐이다. 실제로 엘리트는 순정에서 오일쿨러와 타이어, 레이싱 사양의 브레이크 패드의 교체만으로도 트랙에 곧바로 투입될 수 있을 정도였다. 1963년까지 단 1,408대만 생산된 엘리트는 현재 750여대만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트는 로터스 최초의 쿠페 모델임과 동시에 ‘E’로 시작하는 차명 짓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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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는 창업 6년 만인 58년 처음으로 F1 무대에 진출했고 2년 만에 첫 승을 따냈다. 로터스는 80년대 중반 이후 막대한 자본의 싸움이 된 F1에서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60년대 초부터 70년대 후반까지는 6번의 드라이버즈 챔피언, 7번의 컨스트럭터 타이틀 획득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작은 백야드 빌더가 최고의 레이스인 F1 그랑프리에서 페라리를 꺽고 우승을 차지하자 영국 국민들은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터스는 채프먼 사망 이후에도 1980년 말까지 F1에서 꾸준한 성적을 거두었다. 아일턴 세나는 로터스 소속으로 1985~87년까지 뛰었으며, 이 기간 4번의 우승과 17번의 폴 포지션을 차지했다. 1994년을 끝으로 로터스는 F1을 떠나게 된다. F1이 막강한 자본의 경연장이 되면서 기존의 머신은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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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에는 초대 엘란이 선보인다. 엘란은 엘리트에서 경험을 쌓은 스틸 백본 섀시와 포드의 트윈 캠 엔진으로 뛰어난 성능을 발휘했다. 채프먼이 개발한 스틸 백본 섀시에 글래스 파이버 보디를 얹어 차량 무게는 719kg에 불과했다. 따라서 평범한 포드 1.6리터 126마력 엔진을 얹고도 0→100km/h를 6.7초 만에 도달했다. 엘란은 성능만큼이나 멋진 스타일링으로 1만 2천대가 넘게 생산되는 성공을 거두었다. 62년 발표된 엘란은 가장 성공적인 모델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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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란 이후에는 로터스 최초의 미드십 스포츠카인 유로파가 데뷔한다. 66년 데뷔한 유로파는 로터스 최초의 미드십 레이아웃을 콜린 채프먼이 직접 디자인한 모델이기도 하다. 700kg가 채 안 되는 무게에 초기 모델은 르노의 R16 엔진(82 마력)과 4단 수동 트랜스미션을 얹었으며 공기저항계수는 0.29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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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에 나온 에스프리는 페라리와 포르쉐를 겨냥한 모델이다. 쥬지아로 디자인의 에스프리는 78년 마이너 체인지 된 S2가 나왔으며 터보 모델은 81년 추가되었다. 에스프리는 뛰어난 성능을 인정받긴 했지만 높은 가격의 수퍼카로서 4기통 2.2리터 터보 엔진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95년 V8 트윈 터보 버전이 나오기도 했다. 에스프리는 2004년 2월 20일 단종되었고 총 생산 대수는 1만 675대에 불과했다. 에스프리의 후속 모델은 BMW 엔진을 얹고 페라리에 버금가는 동력 성능과 핸들링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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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는 1982년 창업자 콜린 채프먼 사망 이후 어려움이 찾아왔다. 로터스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84년 토요타에 25%의 지분을 넘기게 되고(토요타는 멀티 밸브 기술을 배우기 위하여 로터스를 인수했다고 알려진다), 4년 후에는 GM으로 경영권이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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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은 뉴 엘란(M100)의 개발을 위해 4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뉴 엘란은 이스즈의 터보 엔진을 얹었으며 로터스답지 않게 중량이 많이 나갔다. 거기다 전통의 FR이 아닌 FF였다. 많은 개발비를 들인 엘란이 성공하지 못하자 GM은 다시 93년 로마노 아르티올리의 부가티에 로터스를 넘기게 된다. 이후 부가티가 몰락하면서 로터스는 1996년 말레이시아의 프로톤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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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는 로터스가 부가티 산하 시절인 96년 첫 선을 보였다. 현재 로터스 라인업의 핵심이자 베이스가 되는 모델이기도 하다. 엘리스는 부가티의 회장이었던 로마노 아르티올리의 손녀 이름이다.
엘리스의 알루미늄 섀시는 무게가 65kg에 불과하지만 비슷한 성격의 르노 스포츠 스파이더의 섀시(80kg) 보다 비틀림 강성이 10% 이상 높았다. 평범한 4기통 1.8리터 엔진을 얹었지만 0→100km/h 가속을 5.9초 만에 끊을 정도로 뛰어난 순발력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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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는 2000년대 들어 해외로 눈을 돌린다. 기존의 로버 엔진으로 미국의 배기가스 기준을 맞추기 힘들었기에 토요타의 VVTL-i 엔진을 채용한다. 2세대 엘리스와 토요타 엔진의 만남은 작년부터 이미 예견된 일. 토요타 엔진 최초의 엘리스는 111R이다. 2세대의 섀시는 무게 중심이 더욱 낮아지고 견고해졌다. 또 고출력 VVTL-i 엔진을 얹음에 따라 서브 프레임 등 리어 액슬 부분을 더욱 강화되었다. 토요타 엔진을 채용했지만 T4 EMS는 로터스가 자체 개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엘리스의 연간 생산 대수는 700대 정도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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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는 현재 말레이시아의 프로톤 소속이며 자회사로는 로터스 엔지니어링이 있다. 로터스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컨설팅이다. 차량 개발에 있어 로터스 엔지니어링의 도움을 얻은 회사가 적지 않다. 특히 GM은 오펠 에코텍 엔진과 아스트라의 핸들링 튜닝을 로터스에게 맡겼고, C4 코베트 ZR-1에 올라갔던 LT5 엔진(385마력, 51.3kg․m)도 로터스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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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는 80년대 후반부터 다른 메이커 차의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로터스가 개발했던 모델 중 가장 유명한 차는 오펠 오메가(로터스 타입 104)였다. 90년대 초반에 나온 오메가는 최고 속도가 274km/h에 이르는 세계 최고속 세단이었다. 서스펜션쪽으로는 토요타 초대 MR2와 수프라 2세대와 3세대, 이스즈 피아자, 임펄스 등의 튜닝을 맡았다.
1991년에는 닷지 스피리트 R/T에 220마력 이상으로 튜닝된 2.2리터 DOHC 엔진을 공급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오펠 스피드스터가 유명하다. 스피드스터 역시 엘리스와 알루미늄 섀시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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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동안 로터스 엔지니어링의 규모는 점점 커져 그룹 전체 이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 양산차 메이커와의 협력 관계는 예전 보다 줄었지만 소규모 메이커들의 컨설팅 자문을 꾸준히 맡고 있다. 미국의 전기차 메이커 테슬라가 대표적인 예이다. 테슬라 로드스터는 일렉트릭 엘리스라 불릴 만큼 섀시 개발과 생산을 로터스가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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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는 엘리스 데뷔 전만 하더라도 연간 생산 대수가 300~400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1996년 이후부터는 생산 대수가 2천대를 넘어섰고, 2005년에는 5,053대를 생산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 로터스의 본사는 영국 노르포크 헤텔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룹 로터스는 로터스 카스와 로터스 엔지니어링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의 CEO 마이클 킴벌리는 2006년 5월 부임했다.

로터스의 정확한 창사 60주년은 2012년이지만 올해는 콜린 채프먼이 그의 첫 레이싱카 Mk1을 만든지 60주년 되는 해이다. 로터스는 이를 기념해 오는 9월 14일 영국 본사에서 성대한 행사를 갖는다. 이 60주년 행사에는 1만 5천명 이상이 참석할 예정이며 역대 로터스의 명차들이 총 출동한다.

로터스 F1 연혁

1958 – 로터스, 모나코 GP에서 F1 데뷔.
1960 – 모나코 GP에서 스털링 모스가 최초로 승리를 거둠.
1961 – 컨스트럭터 2위의 성적으로 시즌 마감.
1962 – 2년 연속으로 컨스트럭터 2위 차지.
1963 – 짐 클라크가 처음으로 드라이버 챔피언십 차지. 동시에 최초로 컨스트럭터 타이틀 차지.
1965 – 짐 클라크 두 번째 드라이버 챔피언십과 인디애나폴리스 500 우승. 로터스의 타입 38은 영국 차 최초로 인디 500 우승.
1968 – 그래험 힐 드라이버 챔피언십 차지. 3번째 컨스트럭터 타이틀 차지.
1970 – 조첸 린트 드라이버 챔피언십과 4번째 컨스트럭터 타이틀 획득.
1972 – 에머슨 피티팔디 드라이버 챔피언십 차지, 5번째 컨스트럭터 타이틀 획득.
1973 – 6번째 컨스트럭터 타이틀 획득.
1978 – 마리오 안드레티 드라이버스 챔피언, 7번째 컨스트럭터 타이틀 획득.
1982 – 창업자 콜린 채프먼의 죽음과 액티브 서스펜션 탄생이 동시에 일어나다. 피터 워가 채프먼의 자리를 물려받다.
1983 – 로터스, F1 처음으로 액티브 서스펜션을 도입.
1985 – 아일톤 세나, 포루투칼 GP에서 데뷔와 동시에 첫 승. 이어 열린 벨기에 GP에서도 우승.
1987 – 액티브 서스펜션을 본격적으로 도입했으며 아일톤 세나는 모나코와 미국 GP에서 2승을 거두다(로터스 팀의 79번째 승리).
1990 – 컨스트럭터 9위의 성적으로 시즌 마감.
1991 – 타입 102를 개량시킨 타입 102B 투입. 미카 하키넨 산 마리노 GP에서 5번째 그리드를 차지하며 데뷔.
1992 – 신형 타입 102B와 포드의 F1 V8 엔진을 얹은 102D로 시즌을 시작하며, 초반 허버트와 하키넨이 득점을 올린다. 크리스 머피가 디자인한 타입 107은 이몰라 GP에서 첫 선을 보이며 5위 차지.
1993 – 쟈니 허버트와 알렉산드로 자나르디가 포드 엔진을 얹은 타입 107B로 출전.
1994 – 무겐-혼다 엔진을 탑재한 타입 107C로 시즌을 시작하며 타입 109 데뷔. 자나르디는 팀의 테스트와 개발을 맡는 드라이버로 남게 된다.

가장 빛나는 창업자 – 앤소니 콜린 브루스 챔프먼(Anthony Colin Bruce Chap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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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초 페라리를 떼어놓고 페라리를 얘기할 수 없듯이 로터스 역시 창업자인 콜린 채프먼(1928~1982) 없이 얘기할 수 없다. 1928년 3월 19일 런던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기계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며 17살 때부터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콜린 채프먼은 레이싱카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 낡은 오스틴 7을 구입해 레이싱 카로 개조하면서 콜린 채프먼의 엔지니어 경력은 시작되었다. 51년에는 그의 3번째 작품인 MK3로 750cc 포뮬러 클래스에 참가한다. 이때 그는 남보다 한발 앞서 기존의 프레임에 비해 훨씬 가벼우면서도 강성이 높은 튜브 스페이스 프레임을 사용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이듬해인 52년 로터스를 창업한다.

콜린 채프먼은 자신이 직접 자동차를 제작하면서 ‘왜 스포츠카는 반드시 출력이 높아야 하는가?’하는 의문을 갖는다. 채프먼의 생각은 자동차는 무게를 줄이면 줄일수록 성능이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채프먼의 생각은 그대로 맞아떨어져 작은 엔진을 얹고도 로터스의 차들은 뛰어난 성능을 발휘했다.

그는 경량 섀시 이외에도 F1 무대에 처음으로 액티브 서스펜션을 도입하기도 한 천재적인 엔지니어였다. 82년 12월 16일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에 로터스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의 철학이 배어있는 차만들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자동차 역사상 가장 빛나는 창업자 중 하나인 콜린 채프먼(Anthony Colin Bruce Chapman)은 그의 이니셜을 형상화 한 로터스 엠블럼에 여전히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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